기자 입장에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에게 사의를 표한다. 유세할 때마다 기사 거리를 만들어 주니까. 31일에도 히트작을 내놨다. "오세훈은 산소 같은 남자. 한명숙은 연탄가스." 기가 막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연탄가스 냄새가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40대 이상의 중장노년층은 연탄가스는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앗아가는 '공포'의 대상이라는 점이 콧속에 각인 돼 있다. 어르신들의 귀가 아니라 코가 반응했을 것이다.
'연탄가스'는 그렇다 치자. "서울 공기가 제주도만큼 깨끗해졌다"고도 한다. 아마 '산소 같은 오세훈'을 강조하기 위한 말인 것 같다. 포털 사이트에 '서울', '제주', '대기오염' 세 단어만 쳐 넣고 검색해보라. "서울과 인천, 경기도 등 수도권 지역 대기 오염도가 제주도의 최대 4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2009년 11월 환경부발 기사가 뜬다. 얼마 전에는 "북한 잠수함이 인천 앞바다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오세훈 후보를 압도적으로 당선시키는 것"이라고도 했다. 서울시장이 한명숙이어서 천안함이 침몰했던가. 민주당 당직자는 "허위사실유포라고 항의를 하는 것도 하는 말이 좀 믿음직 스러워야 해볼 것 아닌가"라고 황당해 했다.
민주당 송영길 인천시장 후보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 연일 색깔론을 제기하던 정 대표에게 "소 떼를 몰고 방북한 아버지 고 정주영 회장을 부정하는 불효자"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 얘기를 듣고서야 '맞다. 정몽준 대표가 정주영 회장 아들이었지'라고 새삼 깨달았다.
이와 함께 한 가지 기억이 더 떠올랐다.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2003년 8월 그가 자살했을 때, 기자는 현대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사흘을 꼬박 지내며 취재를 했었다. 당시 장례식장 취재는 문상객의 반응을 받아 적는 것이었다. 하루는 밤늦게 까지 취재를 하고 문상객들이 뜸해져 한 숨 돌리고 있었다. 그 때 정몽헌 회장의 영전 앞에 고개를 떨군 채 가만히 서 있던 정몽준 대표의 쓸쓸한 모습이 보였다. 이 풍경을 보고 한 정치부 선배 기자가 "카메라용 포즈인가"라고 비아냥거리자, 다른 경제지 기자는 "정몽헌 회장과 정몽준 의원이 각별한 사이였지"라고 '연출 의심'에 핀잔을 주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정 씨 일가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해두겠다. 더구나 아버지 정주영, 형 정몽헌 회장이 대북사업의 전도사였다고 해서 정몽준, 정몽구 회장이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무엇보다 이런 건 아닐까. 현대그룹이 대북사업의 희생양이 됐다고 생각할지. 차라리 그렇다면 요즘 왜 그렇게 북한에, 특히 민주당에 적대적인지 설명이 된다. 이 정도면 요즘 '강남 개발사'를 다룬 대하드라마 못지않은 드라마 한 편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까지 다다른다. 미리 제목부터 지어본다. ' 시즌 2'
솔직히 그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활약은 발군이다. 시쳇말로 '발가벗고' 뛰는 그를 보면 점잖은 민주당 지도부가 답답해 보일 정도다. 특히 그가 누구인가. 집권여당 대표이면서도 2010 월드컵을 앞둔 이 시점에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FIFA 부회장이며 FIFA 올림픽조직위원장이기도 하다. 이 뿐인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기업 중 하나라는 현대중공업 최대 주주다. 재산신고 때마다 몇 천 억씩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그이기에 체면 따위는 원래 없었다는 듯한 그의 모습은 감동적일 정도다.
정몽준 대표는 정부여당 지도부 인사 중 몇 안 되는 장교 출신 답게 가히 전장에서 가장 앞장서 싸우는 사령관이라 부를만 하다. 그런데 싸우는 폼새는 왠지 '쓰리 스타', '포 스타'가 아니라 일병, 상병 같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그토록 강조되는 '국격.' 대한민국을 대표한다고 할 만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인 정몽준 대표가 선거 끝나면 다시 '품격'을 되찾으리라 믿고 싶다. 정몽준 대표 품격이 낮은 게 아니라, 이게 다 '선거 탓'이라고 믿고 싶다.
그에게서 듣리는 말이 '인천 앞 바다', '연탄가스' 이런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반값 아파트' 공약을 내걸고 호기롭게 대통령 선거에 나섰던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기개를 엿보고 싶다는 것은 과도한 기대일까.